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과 세종에 동시에 두자는 제안을 내놨다. 용산 대통령실을 “내란의 소굴”이라 규정하고, 청와대 또는 광화문, 그리고 세종에서 함께 집무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겉보기엔 행정의 효율성과 장관 책임제 강화를 위한 제안 같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정치 지도자로서의 확고한 철학이나 결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김경수 전 지사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비판적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어디에 집무실을 둘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결단 없이 “둘 다 쓰면 된다”는 식의 모호한 해법으로 마무리된다. 이 모습은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가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이들은 모두 격동의 시대 속에서 정의라는 확고한 관점에서 정치를 했다. 독재에 맞서 싸우고, 낡은 권위주의 질서를 해체하며, 권력의 집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불편함을 피해가는 수단이 아니라, 옳은 길을 선택하고 대가를 감내하는 결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김경수 전 지사의 이번 행보는 그런 ‘정의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치 불편한 충돌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편의적 정무 감각만이 작동하는 모습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라 불리지만, 지금의 언행은 오히려 노무현이 꿈꿨던 ‘원칙 있는 정치’와 대립된다. 노무현은 세상의 비웃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길이 옳다”고 말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정치란 결국, 국민 앞에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묻는 일이다. 행정적 편의나 정치적 절충을 넘어서, 국민에게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다가설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경수 전 지사가 진정한 지도자의 길로 다시 나아가길 바란다. 정의 앞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더 이상 김대중도, 김영삼도, 노무현도 아닌, 그저 또 하나의 ‘회피형 정치인’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