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월경장애를 경험한 여성일수록 우울 증상을 겪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해당 결과는 대한의학회 학술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게재되었으며, 여성의 월경 문제를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닌 정신건강과 직결된 핵심 건강 이슈로 인식해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번 연구는 2022년 실시된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건강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전국 13세부터 55세 여성 3,088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월경통, 월경전증후군(PMS), 비정상 자궁출혈 등 세 가지 대표적인 월경장애와 우울 증상 간의 연관성을 집중 조사했다.
분석 결과, 전체 응답자의 91%가 한 가지 이상의 월경장애를 경험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7%는 중증 증상을 겪고 있었다. 특히 중증 월경장애를 경험한 여성은 우울감을 겪을 확률이 월경장애가 없는 여성보다 크게 높았다.
월경통이 심한 경우는 1.6배, 월경전증후군은 2.0배, 비정상 자궁출혈은 1.4배 높은 우울감을 보였다.
또한, 중증 월경장애의 수가 많을수록 우울 증상은 더욱 증가했다. 증상이 1개일 경우 1.6배, 2개일 경우 2.0배, 3개 이상일 경우 2.1배까지 우울 증상 경험률이 상승했다.
이러한 경향은 청소년기 여성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청소년기의 경우 중증 월경장애 1개만으로도 우울감 비율이 1.8배, 3개 이상일 경우는 2.8배까지 상승해 성인 여성(1.9배)을 크게 웃돌았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월경 관련 증상을 단순한 생리적 불편이 아닌, 여성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건강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여성건강연구사업을 통해 전국 단위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월경장애와 우울증, 왜 연결되는가?
전문가들은 월경장애와 우울증 사이의 관련성이 단순한 통증 이상의 복합 건강문제임을 강조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과 호르몬 변화는 기분 조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일상 기능 저하와 수면장애,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첫째, 월경 주기 중 변동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은 세로토닌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어 기분 변화, 불안, 우울 증상에 영향을 준다. 일부 여성은 월경전불쾌장애(PMDD)와 같은 심각한 기분장애를 겪기도 한다.
둘째, 반복되는 월경통이나 자궁 내막증 등의 만성 통증은 일상생활의 활동을 제한하고 피로를 유발해 무기력감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주된 요인이 된다.
셋째, 월경 시기의 수면장애도 주요한 문제다. 불면이나 수면의 질 저하가 심화되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이는 우울감의 주요 촉진 요인으로 작용한다.
넷째,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월경을 숨기고 참아야 할 일로 여기는 문화가 존재하며, 여성들이 증상을 표현하거나 치료받는 데 있어 심리적 장벽이 크다. 이는 월경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사회적으로 외면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청소년기의 경우 심리적·사회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월경장애는 자존감 저하, 대인관계 위축 등으로 이어지며, 조기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연구는 월경장애를 생식 건강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정신건강과 직결된 공공보건 사안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정책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여성의 월경을 건강정책의 중심으로 다루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