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최근 들어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핵심으로 삼았던 DEI 정책을 대거 수정하거나 폐지하는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복귀한 이후 행정부 차원에서 연방 및 민간 부문의 DEI 정책을 철회하라는 지침이 강화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DEI 부서를 ‘다양성, 기회 및 포용성(DOI)’으로 개칭하며, 기존의 ‘형평성(equity)’이라는 개념을 ‘기회(opportunity)’로 대체했다. 은행 측은 이 같은 명칭 변경이 “평등한 결과가 아닌, 평등한 출발선과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방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씨티그룹 역시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이 은행은 다양한 후보자 풀을 확보하도록 했던 채용 가이드라인을 폐지하고, DEI 전담 부서를 ‘인재 관리 및 참여 팀’으로 재편했다. 제인 프레이저 CEO는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내부의 채용 목표에서 ‘다양성’ 기준을 철회했으며, 직원 교육 및 승진 기준에서도 DEI 관련 지표의 비중을 줄였다. 브라이언 모이니핸 CEO는 “여전히 포용적 조직문화는 중요하지만, 조직 효율과 시장 경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기업공개(IPO) 자문 기준에서 ‘이사회 내 다양성 요건’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연례보고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솔로몬 CEO는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금융 산업 내 소수계 은행들과 지역 커뮤니티에도 여파를 미치고 있다. 일부 소수계 금융기관들은 대형 은행들로부터의 예금 및 투자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자본 접근성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DEI 정책의 후퇴가 단기적으로는 법적 리스크를 줄이거나 보수적 고객층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다양성 약화와 혁신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제니퍼 하버스 교수는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포용하는 문화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에 결정적인 요소”라며 DEI 정책의 축소에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한편,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DEI 전략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향후 금융권 전반의 흐름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