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100명으로 대폭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사법제도의 근본적 변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장 의원은 연간 수만 건에 달하는 상고 사건을 14명의 대법관이 감당하는 구조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며, 대법관 정원의 대폭 증원을 통해 대법원의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관 1인당 연간 수천 건에 달하는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개별 사건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질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상고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원 확대를 통해 사건을 보다 심도 있게 심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다양한 배경의 법조인들이 대법관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100명 증원안'에 대해 실효성과 제도 정합성 측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단순한 사건 처리기관이 아니라 법률의 최종 해석기관이자 판례 통일의 중추라는 점에서, 지나친 정원 확대는 법리의 일관성과 판결의 예측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현재 대법원은 4인 구성의 소부에서 대부분의 사건을 심리하고 있으며, 주요 사건에 한해 14인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원이 1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경우 전원합의체 운영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각 소부가 서로 다른 법리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판례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한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하는 구조인 만큼, 정원 증대가 정치권의 입김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여야 대치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불거질 경우, 사법부 독립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원의 일부 증원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그 규모는 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관 과중 업무를 고려하더라도 30~40명 수준의 증원이 적절하며, 단순한 숫자 증가보다는 상고심 구조 자체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모두 ‘상고허가제’를 도입해 대법원이 직접 심리할 사건을 엄격히 선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는 구조여서 정원 확대만으로는 본질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원 증원과 함께 상고허가제 도입, 상고법원 신설, 고등법원 기능 강화 등의 제도 개편이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사법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전속관할 확대와 전문법원 분산 운영을 통해 대법원의 부담을 구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장경태 의원의 문제의식은 타당하지만, 해법으로 제시된 ‘100명 증원’은 오히려 법원 운영의 혼란과 사법 신뢰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수적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본연의 역할인 법리 통일과 국민 기본권 보호 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사법개혁은 단순한 인원 늘리기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적 신뢰 회복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