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한류의 열풍과는 달리, 한국어 교육 정책은 여전히 불균형적이다. 현재 정부와 여러 공공기관이 운영 중인 한국어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개발도상국 중심의 국제협력 틀 안에서 편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북미와 서유럽의 주요 대학이나 교육기관에는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체계적 장학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어나 일본어가 하버드, 옥스퍼드, 파리정치대학 등 서구 유수 대학들에 깊숙이 뿌리내린 것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이로 인해 북미와 유럽의 고급 인재층은 한국어 학습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한국은 문화소프트파워 경쟁에서 전략적 열세에 놓이게 된다.
중국·일본은 '선진국형 언어외교'... 우리는 여전히 'ODA형'
중국과 일본은 자국어 확산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일본국제교류기금(JF)은 선진국 대학과 협력해 교수직을 파견하고, 중국의 공자학원은 전 세계 500여 개 이상 설치되어 자국어와 문화를 고급스럽게 전파한다. 이들은 단순한 언어 교육을 넘어, 자국에 대한 이해와 호감을 고취시키는 ‘문화 외교’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나 세종학당재단 등은 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무상원조나 교육협력의 일환으로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국가의 엘리트층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강대국이 되려면, 강대국 학생을 끌어안아야
한국이 진정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위상을 반영한 언어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북미와 서유럽, 나아가 오세아니아의 명문 대학들과 연계하여 한국어 전공과정을 확대하고, 장학금과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선진국 청년들에게도 폭넓게 개방해야 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나 외교부 차원에서 ‘선진국형 한국어 확산 전략본부’를 설치해 중장기적 접근을 해야 한다. 한류 스타의 인기로 끝나는 단기 유행이 아니라, 정책적 지원으로 연결되는 실질적 확산이 절실하다.
"한국어는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
미국 명문대 한국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어에 관심이 많지만, 미국 내에는 체계적인 장학제도나 교환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요. 일본어는 JET 프로그램이나 일본재단의 지원으로 다양한 기회가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워요.”
이는 단지 개인의 불만이 아닌,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언어외교 전략이 여전히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언어는 국력의 지표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BTS와 김치, 반도체와 K-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언어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문화강국’은 단지 수사에 그치고 만다.
이제는 ‘개발도상국형 언어외교’를 넘어, '강대국형 언어외교'로 전환할 때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강대국의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은 보다 넓은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