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주재하며 다시 한번 미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고대 전차부터 최신형 전투헬기까지 동원된 이번 행사는 표면적으로는 역사 기념 행사였지만, 실제로는 행정부의 군사력 과시와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이중 이미지’를 형성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콘스티튜션 애비뉴에 설치된 주석 관람석에 앉아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피트 헥세스 국방장관과 함께 전차 행진과 공중 전시비행을 지켜봤다. 이는 걸프전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로, 시내 곳곳은 높은 검은색 통제 펜스로 봉쇄됐고, 60톤에 달하는 전차 이동으로 인해 워싱턴 시당국은 도로 손상에 대한 수십억 원대 복구 예산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미국의 적은 반드시 패배하고,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며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다. 조지 워싱턴과 게티즈버그 전투를 언급하며 역사적 위상을 강조했지만, 군의 ‘목적’보다는 ‘힘’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우리는 세계 최고의 미사일, 잠수함,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며, 군사력 자체가 국가 자긍심의 핵심임을 반복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대통령 권한 남용 논란과 맞물려 거센 반발을 낳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동의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4천 명의 주방위군과 700명의 해병대를 투입하며 이민 단속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전역에서 약 2,000여 개의 시위가 ‘No Kings(우리는 왕을 원치 않는다)’ 슬로건 하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시애틀에서 키웨스트에 이르기까지 대도시뿐 아니라 인디애나의 농촌 지역에서도 시위가 열렸으며, 댈러스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 행진을 벌였고, 휴스턴에서는 멕시코 음악과 분수춤이 어우러진 축제 형태의 항의가 펼쳐졌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밤 8시 통행금지령 직전 연방 청사 주변에서 경찰이 화학 최루제를 사용하고, 기마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며 긴장이 고조됐다.
한편, 이날 행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겹쳤으며, 행사 조직위는 대형 기부자들을 위한 ‘VIP 전용 체험권’을 판매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빨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배포했다. 그러나 행사는 대통령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육군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라고 트럼프는 주장했다.
행사의 비용 문제도 논란이다. 백악관은 최대 4,500만 달러에 달하는 총 비용에 대해 “국가 자긍심을 고취하고 세계에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대가로는 적은 금액”이라고 주장했지만, 비판자들은 "국제원조, HIV 예방, 기초연구 예산을 축소하면서 군사력 과시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중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미 의회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패티 머레이 상원의원(민주·워싱턴 주)은 “군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대통령의 정치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주지사의 동의 없이 군 병력을 주에 투입한 행위는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이라 비판했다.
시위 조직에는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총기규제 및 낙태권 단체, 사회복지 관련 시민단체들이 연합했으며, “우리는 충돌이 아닌 대비(contrast)를 원한다”는 구호 아래 필라델피아에서는 대규모 평화 시위가 진행됐다.
한 정치학자는 이번 행사를 두고 “이전 대통령들이 기피하던 군사 행사를 내치로 끌어들임으로써, 트럼프는 군사력 과시와 정치적 이미지 구축을 결합하려 한 것”이라 분석하며, “이는 미국 민주주의가 군에 대한 민간 통제(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라는 전통적 원칙과 다시금 충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