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워싱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바그다드 침공을 결심하기 직전, 긴장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로 끝날 것이라 자신했고, “임무 완료(Mission Accomplished)”라는 문구 아래 전쟁은 곧 끝날 듯 보였다. 그러나 전쟁은 9년간 이어졌고, 미군 4,000명, 이라크인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끝에, 이는 ‘역사상 최악의 오판’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라크 전쟁의 그림자가 다시 워싱턴을 드리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영원한 전쟁’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이제는 이란의 핵시설을 정밀타격할 가능성을 두고 고심 중이다. 20만 명의 병력이 중동에 집결했던 이라크 침공과 달리, 지금은 그런 대규모 준비도 없고 대규모 반전 시위도 없지만, 불확실성과 두려움은 그때와 닮아 있다.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 교수는 “이건 마치 똑같은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며 “과거엔 우리가 몰랐고, 이라크에 대해 희망적인 말만 믿었지만, 모든 전제는 틀렸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부시 행정부는 ‘미군이 해방자로 환영받을 것’이라 말했고, 전쟁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정보에 대해 내부적 이견이 있었다.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추진했던 신보수주의 세력들은 이번에도 이란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에도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미국 사회는 숨을 죽이고 있다. 트럼프는 “내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며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명분으로 이란의 지하 핵시설 포르도(Fordo)를 30,000파운드짜리 ‘벙커 버스터’ 폭탄으로 타격하는 ‘단 한 번의 공격’을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내 정보수장인 툴시 개버드는 지난 3월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 중이 아니다”라고 밝힌 반면,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고 “이란은 거의 핵무기를 완성했다”고 맞받았다.
군사·정보계 일각에서는 이란 공격이 가져올 후폭풍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윌리엄 폴런 전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공격 이후 전략이 무엇인지, 이란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우리는 지금 너무 충동적”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사령관은 “이번 사태는 나라 전체를 침공하는 것이 아니다”며 비교를 경계했지만, 동시에 트럼프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 핵프로그램 완전 폐기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메네이가 이를 거부할 경우, 미국은 “그의 국가와 정권, 국민을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약 이란 핵시설을 타격할 경우, 이란이 미군 기지나 홍해를 오가는 선박을 공격하는 등 군사적 보복에 나서면서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나스르 교수는 “이란은 이라크보다 인구도 많고, 훨씬 더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군대를 가진 나라”라며 “트럼프가 이라크 전쟁의 재현을 자초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신보수주의 대표 인사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포르도를 폭격하고 끝내야 한다”며 공격을 촉구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도 강력히 찬성했던 인물로, 트럼프와의 갈등 이후 경호가 박탈되었음에도 여전히 공세적 대외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볼턴은 “트럼프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서 늘 불안하고 조급해 한다”며 “계속 누군가가 ‘마법의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스타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한 말을 듣고는 ‘맞아, 이게 내가 믿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다음 대화를 들으면 또 바뀐다.”
이라크 전쟁이 남긴 교훈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미국은 다시 한 번 위험한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