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방부 장관직은 오랫동안 육군 출신 장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이는 남북 간의 특수한 대치 상황 속에서 지상전 중심의 전통적 안보 구도가 정당화되어 온 결과다. 하지만 현대전의 양상은 과거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기술 기반의 전장, 다차원적 위협, 글로벌 안보 연대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동하는 오늘날, 국방 리더십의 구성 또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5선 국회의원이자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안규백 의원이 민간인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상징성과 실질적 의미 모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안규백 지명자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국방 및 외교안보 분야의 입법과 정책에 깊이 관여해 온 전문 정치인이다. 특히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군 구조개혁, 방위산업 진흥, 한미동맹의 전략적 조율 등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해온 점은 그가 단순히 ‘비(非)군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그의 지명은 문민통제의 원칙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군 출신 일색의 국방 리더십 구조에 변화의 물꼬를 튼 결정적 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기존의 육군 중심 체계는 자칫 현대전에 필수적인 해군·공군·우주·사이버 전력의 비중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 안보의 핵심은 단일 전장이 아닌 다영역 통합전력(Multi-Domain Operations)이며,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전략가형 리더십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민간인 출신 장관은 군 내부 질서에 매몰되지 않고, 외교와 안보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며 새로운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을 지닌다.
물론, 국방부 장관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비군인'이라는 상징성이 아니다. 확고한 안보관, 냉철한 국제 감각, 군 조직에 대한 이해와 개혁 의지가 핵심이다. 안 지명자는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한반도 및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역학에 대한 통찰력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된다. 동시에 그는 군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필요시에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구조적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리더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지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안보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 혹은 정치인이 국방부를 이끄는 체제가 정착된다면, 국방은 특정 군 출신 중심의 폐쇄적 체계를 넘어, 국민 전체의 시각에서 효율성과 미래성을 갖춘 방향으로 재편될 수 있다. 이는 단지 ‘누가 장관이 되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안보를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조적이고 철학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안규백 의원의 국방부 장관 지명은 군사력의 단순한 확장을 넘어, 전략과 책임, 그리고 민주적 통제를 중시하는 새로운 안보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이 변화가 군의 전문성과 민간의 통찰력이 조화되는 문민 통제의 정착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