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이 이란의 핵시설을 뒤흔든 지 열흘. 그러나 정작 세계의 이목은 폭격의 파괴력보다 그 안에 있던 ‘880파운드’의 고농축 우라늄에 쏠려 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결정짓는 열쇠이자, 어쩌면 향후 외교의 무기가 될지도 모를 그 물질의 행방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미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우라늄은 움직였다” vs “움직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괴된 포르도(Fordo) 핵시설에 우라늄이 있었다’며, "그 무거운 물질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컨테이너 하나가 일반 승용차 트렁크에도 실릴 수 있을 정도로 작다”며, “증거는 상당량이 이동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고농축 우라늄의 대다수가 이스파한(Isfahan)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이스파한 인근 연구소에서는 공격 전후로 차량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란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전략이 공습에 대비해 분산 보관하는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과장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파괴된 것은 시설이지,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포르도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는 사실상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고, 우라늄을 무기화하기 위해 필요한 이스파한의 변환시설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프로그램 자체가 완전히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란의 핵 개발 역량이 시설의 존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짐 하임스 의원은 “60% 우라늄, 원심분리기, 무기화 도구가 외부에 존재한다면 핵심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은 악랄하지만, 어리석지는 않다”
이란은 과거에도 공습 가능성에 대비해 중요 시설과 자산을 지하로 옮기거나 분산 배치해온 전력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상당량의 우라늄이 ‘제3의 장소’로 이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이란이 핵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통적인 협상 전략이기도 하다.
유럽 정보당국도 “우라늄의 일부가 사전에 이동됐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도, “정확한 양과 위치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핵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임무 완수’를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결정적인 증거’ 없이 안도하기엔 이르다고 본다. 공습으로 이란의 핵개발 속도는 분명 늦춰졌지만, 그 시간은 ‘몇 개월’일 수도 있다. 과거 북한 사례처럼, 은닉된 우라늄과 살아남은 과학자만 있다면 ‘조잡한 핵무기’ 제작은 시간문제라는 경고도 나온다.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란이 일부라도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불확실성은 ‘군사적 승리’가 곧 ‘안보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