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당대표 시절, 민주당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특활비를 대폭 삭감하며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어 이재명 대통령 체제가 들어서자 민주당은 특활비를 원상복귀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여야 간의 공방은 극심해지고,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특활비 액수에 있지 않다. 여야 간 입장 차이가 본래라면 각자의 뚜렷한 이념과 정책 철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입장 차이는 철학과 원칙의 충돌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방이라는 처한 위치’에서 결정된다. 야당일 때는 견제와 비판의 깃발을 들고, 여당이 되면 같은 사안을 합리화하고 옹호하는 모습은 이미 익숙하다.
특활비를 깎았으면 좀 힘들어도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국민은 정치세력에 신뢰를 보낸다. 그러나 이번 특활비 논란에서 보듯 민주당은 원칙을 버리고 ‘권력 편의주의’를 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다. 정책과 운영 방식의 일관성, 그리고 국가 미래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다. 방송법이든 검찰개혁이든, 국회 운영 방식이든,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각자가 뚜렷한 정책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은 ‘진보의 맛’도 보고 ‘보수의 맛’도 경험하면서, 자신이 지지할 가치와 비전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야는 정책과 제도를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만 활용해왔다. 본래 목적은 국민을 위한 제도 개혁과 미래 설계에 있었어야 하지만, 현실은 권력 유지를 위한 무기화로 변질되었다. 이념과 원칙이 아닌, 그때그때 자신이 선 위치와 유불리에 따라 태도를 바꿔 온 정치권은 국민의 피로감과 정치 혐오만 키워왔다.
민주주의는 ‘정권 바꾸기 놀이’가 아니다. 정치는 정책과 철학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미래를 제시하는 일이다. 여야 모두, 그리고 모든 정치세력은 원칙과 일관성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국민은 정치에 희망을 걸고, 정치 역시 국민의 신뢰 위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