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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왜 축구감독을 소환하는가 — 홍명보 청문회, 정치의 자기 확장에 대하여

2026-07-22 18:36 | 입력 : 탁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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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회로 불려온 축구

오는 7월 30일,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 증언대에 선다. 감독 선임 절차의 공정성, 월드컵 부진의 원인, 그리고 미국 재출국의 경위까지 국회가 그에게 물을 것은 많다고 한다. 참고인 명단에는 손흥민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며 이번 청문회는 이미 스포츠 뉴스의 지면을 넘어 정치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2024년 9월의 문체위 현안질의, 그리고 그 이후로 반복된 스포츠 협회 소환의 풍경을 우리는 이미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은 지금 다시 묻는다. 국회는 도대체 축구감독을 부를 권한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이런 방식으로 써도 되는가.

권한은 있다 — 그것이 이 논쟁의 시작이자 함정이다

법률적 답부터 분명히 하자면, 국회는 홍명보를 부를 수 있다. 헌법 제61조는 국회에 국정감사·조사권을 부여하며 이에 필요한 증인 출석과 증언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든지 증인으로 출석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며 정당한 사유 없는 불출석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예정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형식상 민간 사단법인이라는 반론도 이 지점에서 힘을 잃는다. 국민체육진흥기금과 문화체육관광부 보조금을 받으며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활동하는 KFA에게 국고가 흐르는 이상, 국정감사가 그곳에 미치는 것은 헌법 질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제는 "권한이 있느냐"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결론이 나 있으며, 진짜 질문은 그 권한이 있다는 사실이 곧 권한을 쓰는 방식의 정당성까지 보증해 주는가에 있다.

권한과 정당성 사이의 간극

권한의 존재와 권한의 정당한 행사는 다른 문제이며, 이는 헌법이 규정한 모든 국가작용에 공통되는 원리이다. 국회입법조사처조차 지난 국정감사를 두고 "증인 채택 자체가 정쟁 수단이 됐다"는 자기비판을 남긴 바 있고, KBS의 취재에 따르면 국정감사에 소환된 증인의 상당수는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귀가한다고 한다. "이럴 거면 왜 불렀는가"라는 질문이 이제 국민의 것이 아니라 증인들 자신의 것이 되어 버린 셈이다. 민간인 소환에 대한 법조계의 오랜 지적 역시 같은 맥락에 있으니,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비례원칙의 네 단계는 국가권력 일반에 요구되는 헌법적 요청이며 국회의 증인 소환권 역시 그 예외일 수 없다. 이 시험에 비추어 볼 때, 감독 선임 절차의 행정적 공정성을 규명하려는 조사는 국회 소관 사무에 속하며 국고가 투입된 협회의 거버넌스는 정당한 조사 대상이 되지만, 경기 결과와 전술 실패, 그리고 개인의 미국 체류 경위까지 국회가 추궁하려 든다면 이는 더 이상 조사가 아니라 여론재판에 가깝다. 축구감독의 전술은 국회가 심판할 대상이 아니며, 그것은 축구팬의 몫이고 협회 내부 절차의 몫이며 궁극적으로 성적표의 몫이다. 손흥민의 소환 논란은 이 경계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감독 선임 과정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현역 선수를 부르는 것이 과연 국정조사인지, 아니면 카메라 앞에 스타를 세우고 싶은 정치인의 욕망인지 우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스포츠 자율성이라는 또 하나의 축

여기서 우리는 국내법의 지평을 넘어서는 문제 하나를 마주해야 한다. FIFA와 IOC 헌장은 정치권력의 스포츠 조직 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인도와 나이지리아, 쿠웨이트 등은 정부의 협회 인사 개입을 이유로 실제 국제대회 자격이 정지된 전례를 남겼다. 물론 국회 청문회가 곧바로 FIFA 제재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감독 선임이라는 협회 재량의 핵심 영역에 국회가 반복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가 굳어질 경우 한국 축구는 국제 스포츠 규범과 충돌하는 회색지대로 진입하게 된다. 국내 정치의 뜨거움을 국제 스포츠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며, 그 위험은 결국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의 청문회

이 모든 논의는 결국 하나의 배경 위에 놓여 있으니,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시대라는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국회가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국회가 엉뚱한 일에 지나치게 열심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물가, 연금과 노동과 의료처럼 국민이 정말 답을 듣고 싶어 하는 자리에는 답이 없고, 카메라가 잘 잡히는 자리에는 늘 국회의원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축구감독 청문회는 두 가지 얼굴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온 스포츠 협회의 거버넌스를 국민 앞에 드러내는 계기라는 좋은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 불신을 무마하기 위해 국민 정서에 편승한 카타르시스 이벤트라는 나쁜 얼굴이다. 두 얼굴 중 어느 쪽이 지배적일지는 결국 청문회 당일 국회의원들의 질의 수준이 결정할 것이며, 그것은 감독 선임 서류를 몇 페이지나 읽어 왔는가로 결정될 문제이자 동시에 손흥민 앞에서 몇 초짜리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가로 결정될 문제이기도 하다.

권한을 절제할 줄 아는 국회를 위하여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권력은 위법한 권력이 아니라 합법이지만 절제되지 않은 권력이며, 위법은 사법이 통제할 수 있지만 절제되지 않은 합법은 오직 정치문화와 국민의 감시만이 통제할 수 있다. 국회는 홍명보를 부를 수 있지만, 부를 수 있다는 것과 불러야 한다는 것은 다르며, 부르더라도 무엇을 물을 것인가와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묻지 않을 것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번 청문회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회의 신뢰를 한 번 더 깎아 먹는 자리가 될 것이다. 축구는 국회의 것이 아니며, 축구협회의 국고 사용은 국회의 것이지만 축구 그 자체는 아니라는 이 경계선을 지킬 줄 아는 국회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갖지 못했고, 정치 불신의 진짜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는 7월 30일 우리는 국회의 권한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곧 권한을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이 오늘의 국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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